경찰, 기마대 경찰마 몽땅 팔아치운다…‘퇴역마 복지’ 요구 받자
서울경찰청이 77년간 운영해온 경찰기마대를 폐지하고 남아있는 말들을 모두 매각하겠다고 9일 밝혔다. 그동안 서울경찰청이 매각했던 기마대 퇴역마들이 승마장, 사슴농장 등으로 팔려간 뒤 행방이 묘연하거나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는 것이 확인돼 비판이 제기됐었는데 기마대 폐지를 이유로 말들을 다시 열악한 환경으로 내몬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물자유연대는 10일 “국가를 위해 헌신한 말을 끝까지 책임지라는 시민의 요구를 마주한 서울경찰기마대가 최악의 방법을 택했다. 현재 기마대에 속한 말 10마리를 이전 방식과 마찬가지로 매각해 손쉽게 떨어내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라며 “정부기관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쉽고 부도덕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8월 동물자유연대는 서울경찰청이 기마대에서 활동하던 말들을 폐마 처리(은퇴)한 뒤 불특정 다수에게 매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말 매각정보에 대한 자료를 요청했다. 확인 결과, 최근 5년 동안 퇴역한 8마리의 말들은 안락사 당하거나 승마장, 사슴농장 등에 팔렸다.
이후 동물자유연대는 말들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경기·충남 등 일부 현장을 찾았는데, 농장 가운데 한 곳은 ‘충남 부여 폐축사 말 학대사건’의 소유주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그는 지난해 9월 부여의 폐축사에 말 두 마리를 굶어 죽기 직전까지 방치해 비판을 받았다. 이러한 말 매입업자들은 폐마를 사들여 한약재·반려동물 사료로 도축하거나 되파는 것으로 전해졌다. 동물자유연대 현장 조사에서 기마대 퇴역마들의 모습은 확인할 수 없었고 현재까지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10월4일 동물자유연대는 ‘서울경찰기마대는 퇴역마 복지 체계를 수립하라’는 내용의 성명을 내고, 10월12일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동물자유연대와 만난 자리에서 퇴역마 보호에 협조하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그런데 한 달 만에 결국 기마대 폐지 및 말 매각이라는 결정이 내려진 셈이다.
동물자유연대는 서울경찰청의 이 같은 조처가 10월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 당시 답변과도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서울경찰청은 국감 때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의 퇴역마 관련 질의에 ‘봉사동물이 은퇴 후에도 편히 쉴 수 있도록 동물보호센터 등에 무상증여될 수 있는 방안을 점진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런데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기마대 폐지와 말 매각 결정이 전해졌다”며 “거짓 답변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서울경찰청은 경찰기마대 폐지는 이전부터 논의되어 온 사안으로 최근의 ‘퇴역마 논란’과는 별개라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10일 한겨레에 “경찰기마대 폐지는 부족한 현장 치안 인력 재배치 차원에서 결정된 것일뿐”이라고 밝혔다. 현재 경찰기마대에는 경찰관이 7명이 근무 중이다.
이 관계자는 “은퇴한 말의 복지가 우려된다는 동물자유연대의 앞선 지적에 따라 이번에는 말 매각 때 ‘특수 계약 조건’을 명시해 말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환경으로 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말을 공개 매각하면서 계약 조건에 ‘적합한 사료와 물을 공급하고, 운동과 휴식, 수면을 보장하며 질병에 걸리거나 부상을 당한 경우 신속하게 치료하거나 그 밖의 조처를 하는 등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문구를 명시해 인수자가 복지에 신경쓰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에 강제성은 없다.
경마, 기관 등에서 이용되다 퇴역하는 말의 이력 관리·보호에 대한 법령이나 제도가 전무한 현 시점에서는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게 서울경찰청의 입장이다.
동물단체들은 퇴역 경주마·봉사동물 등을 위한 ‘전 생애 이력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말의 출생부터 죽음까지 전 과정을 관리할 동물보호법 개정안이 발의돼 계류 중이다. 단체들은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퇴역 경주마 마리아주(까미) 사망 1주기’를 맞아 기자회견을 열고, 퇴역 경주마의 보호 법안 마련과 말 산업 전반에 대한 개선을 촉구한 바 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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